Q. 안녕하세요 작가님! 간단한 자기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어떤 글을, 언제부터 쓰셨나요? 무엇을 좋아하거나 싫어하시나요?
안녕하세요, 저는 녹차빙수이고, 호러 장르 중단편 소설을 주로 창작합니다. 본격적인 창작은 의무교육 시절(희미한 기억……) 〈바이오 하자드〉의 팬픽으로 시작했던 것으로 기억하고, 긴 습작기를 거쳐 아직도 습작기인 지금까지 거진 호러만 써왔습니다.
가장 좋아하는 호러는 코스믹 호러(의 경이감이 좋아서)인데, 특히 크툴루 신화를 좋아해서 반쯤은 팬픽인 〈점례아기 본풀이〉 같은 글도 썼습니다. 크툴루 신화를 한반도로 확장해보고 싶다는 마음에 니알라토텝과 아자토스를 고려시대 배경에 집어넣어본 단상 수준의 글이지만, 이 글 이후로 브릿G에서 제 작업에 관심 가져주는 분들이 늘어나서 나름대로 애착이 가는 글입니다.
가장 선호하지 않는 장르는 생물을 물리적으로 괴롭히는 묘사가 유일한 존재 목적인 호러(의 낯선 윤리관을 잘 못 견뎌서)입니다.
Q. 작가님의 작품을 읽으면 '어둠'이라는 단어와 '눈물'이라는 단어가 떠오릅니다. 혹시 이 두 단어를 듣고 떠오르시는 이야기가 있으신가요?
딱 떠오르는 건 다리오 아르젠토의 '세 어머니 연작'*이요. '어둠의 마녀'와 '눈물의 마녀'가 '한숨의 마녀'와 함께 '세 어머니'라는 마녀집단을 구성하거든요.
소설에서는 에드거 앨런 포의 《함정과 진자》입니다. 주인공이 한치 앞도 보이지 않던 어둠 속에서 절망적인 진실을 마주하고 눈물을 흘리던 순간 전격적으로 급변하는 결말의 충격이 정말 강렬했던 작품입니다.
또 공포 영상 전문 유튜버 중에 '_ Boisvert'라는 분이 있는데 이분의 〈Take Care〉라는 작품이 있습니다. 평범하게만 보이는 일상의 이면에 흐르고 있는 어둠과 눈물을 나름대로 잘 표현했다고 생각합니다.
제 인터뷰이니 제 글 얘기도 하자면, 〈충청도에 있는 교회〉와 〈단지〉가 각각 '어둠'과 '눈물'을 대표한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어둠이라 하면 깜깜한 절망이 연상되는데, 〈충청도에 있는 교회〉는 같은 집에 사는 권력자가 공포의 대상이 되는, 가장 원시적이고 현실적인 절망을 다루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맥락에서는 온 세상 사람이 내 적이 되는 〈바깥 세계〉도 비슷한 정서를 공유한다고 생각합니다. 〈단지〉는 원하는 일이 잘 풀리지 않는 사람이 나오는 글인데, 저는 '눈물'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그러한 상황의 상시적인 좌절감이 떠오릅니다. 〈요술 분무기〉도 〈단지〉와 짝을 이루는 글로 비슷한 관념을 다루고 있습니다.
*다리오 아르젠토 감독의 공포영화 3부작, 〈서스페리아〉 〈인페르노〉 〈눈물의 마녀〉를 이른다.
Q. 〈과학무당과 많은 커피〉라는 단편을 보고 비루한 일상에서의 긴장이 쌓이다가 마지막 지하철 씬에서 고양감이 폭발하듯 밀려들었어요. 새로운 형태의 SF를 접한 흥분이 있었습니다. 작품에서 사용하신 카페인 새의 개념이라든가, 과학무당이라는 새로운 형태의 히로인들은 어떤 사연으로 탄생했나요?
보통 마법과 과학은 대립적인 입장으로 쓰이잖아요? 근데 요즘 대세가 융합이니까 섞어봤어요. 사실 지금도 유사과학을 따르는 이름만 과학자인 마법사들이 무수하거든요. 그런 사람들은 보다 보면 혈압이 오르지만, 그런 부정적인 사례 말고 평범하게 사고하는 과학기술자들이 실존하는 신비 때문에 신비주의자를 겸업하면 흥미로울 듯해 과학무당 설정을 생각해봤어요. 같은 세계관인 〈필하율 학생의 직업체험 보고서〉에 해당 설정의 초기 형태가 '랩 샤먼'이라는 이름으로 등장하는데 그것을 좀 발전시켰습니다. 카페인 새의 설정은 '변상증pareidolia'*이라는 현상을 알았기에 고안할 수 있었어요. 과학무당이라는 단어가 우스운 뉘앙스니까 귀여운 동물도 나오면 좋을 것 같았고, 마녀한테 패밀리어가 있듯이 과학무당에게도 신비한 능력을 가진 반려동물(?)을 붙여주고 싶었거든요. 그런데 그 동물이 이야기에서 핵심 역할까지 해야 하니 이 모든 조건에 딱 맞는 화학식을 찾아내는 게 고역이었어요. 캐릭터 고안에만 꼬박 세 달 정도 걸렸던 것 같은데 재미있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ㅠㅠ)
* 모호하고 연관성이 없는 현상이나 자극에서 일정한 패턴을 추출해 연관된 의미를 추출해내려는 심리 현상, 혹은 여기에서 비롯된 인식의 오류를 나타내는 말. (출처: 두산백과)
Q. 〈흩어진 아이돌〉을 본 다음 며칠은 머릿속에서 장면들이 떠나지 않았습니다. 사회에서 흔히 '바닥인생' 혹은 '루저'라고 불리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을 작품에서 묘사하실 때 어떤 부분을 특히 강조하거나 새롭게 보여주고 싶으셨는지 궁금합니다. 그리고 그들의 이야기에서 어떤 점이 가장 무섭다고 느끼는지도요.
사회적으로 여유가 지나치게 부족한 삶을 사는 사람을 묘사할 때는 그 사람 자체가 아니라 그 사람이 처한 상황을 두려운 것으로 묘사하고자 해요. 그리고 그들의 이야기에서 가장 무서운 점은 그 상황이 언제든지 사람이 통제할 수 없는 힘(운 같은)에 의해 나의 상황이 될 수 있었거나 있을 것이라는 점이라 보고요. 이 부분은 많은 분들이 공감하리라 생각합니다. 사실 〈흩어진 아이돌〉은 이처럼 어둡고 혼란스러운 삶에서 가지게 되는 희망(그 자체가 두려운 것이라기보다는 때로는 가장 무서운 존재가 될 수도 있다는 점)의 공포를 초자연적인 존재의 모습을 빌려 표현해본 것입니다. 그렇다 보니 그 존재가 본색을 드러내는 가장 마지막 장면에 많은 공을 들였는데 웹상에 올린 후로도 세 차례에 걸쳐 수정해서 현재의 형태로 정착되었습니다.
Q. 앞으로 쓰고자 하는 호러 혹은 SF 장편소설이 있으신가요? 있다면 미리 살짝 들려주시면 좋겠습니다.
장편은 힘들 것 같고 상황이 된다면 20화 정도의 호러 중편을 쓸까 싶어요. 사람들이 미궁에서 탈출하려는 내용입니다. 그 밖엔 '과학무당'의 세계관으로 단편을 몇 개 쓰려는데 여유가 없군요!
⭐5+1) BONUS
Q. 만약 작가님 옆에 자신을 실패한 인생이라고 치부하는 사람이 있다면 어떤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으세요?
남에게 조언하는 일은 꺼리는데, 꼭 해야 한다면 햇볕은 많이 쬐고 술은 가능하면 마시지 말라는 정도만 말해주고 싶어요. 이야기를 해주기보다는 들어줘야 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