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 보통 공포소설을 쓰실 때 누가 읽어주기를 바라면서 쓰시나요? 그리고 읽는 이가 어떤 감정을 느끼길 바라시는지요?
호러라는 장르는 자칫 잘못하면 손쉽게 혐오로 빠질 수 있는 장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에게 낯선 존재들을 타자화하고, 그들을 공포의 대상으로 만드는 건 무척 간단한 일이니까요. 이야기가 그렇게 흘러가게 내버려둬선 안됩니다. 낯선 존재들, 피해자들, 약자들이 자신들에게 해코지한 상대를 향해 어떤 사건을 일으키는 이야기라면, 우리는 그 사건의 두려움이나 잔혹함이 아니라 그 약자들의 슬픔에 더 귀를 기울여야 해요. 사적인 복수는 물론 옳지 않지만, 현실에서 돌파할 방법을 찾지 못한 약자들의 이야기는 상상 속에서라도 복수를 꿈꾸게 될 수 밖에 없습니다. 그것을 단순히 공포로 치부하고 넘어가는 것은, 혐오를 키우는 일일 뿐이고요.
제가 쓰는 호러들은 현실적인 부분이 강하고, 그런 만큼 배제당한 사람들의 이야기에 무게중심을 두고 쓰고 있습니다. 속이 시원한 이야기는 아니에요. 하지만 어떤 식으로든, 차별받고 배제당한 분들을 아주 조금이라도 위로할 수 있는 이야기가 되기를 바랍니다. 그런 글이었으면 좋겠어요.
Q. 작가님이 가장 심하게 덕질해온 호러, 기담, 미스터리 세 작품만 골라주세요.
호러나 기담 쪽은 두루두루 넓고 다양하게 읽었지, 한두 작품을 특별히 덕질하는 쪽은 아니었습니다. 어린이용으로 나왔던 《어우야담》부터 시작해서 이런저런 야담류에 나오는 귀신 이야기들이 재미있었고, 커서는 《천예록》에 묘사된 기이한 이야기들을 좋아했지요. 동양풍의 기담이라 하면 《요재지이》가 먼저 떠오르지만, 한국의 귀신 이야기를 할 때는 《천예록》을 빼놓을 수 없을 것 같습니다. 대략 그 무렵에 곽재식 작가님께서 “게렉터 블로그”에 우리나라의 문헌에 등장한 귀신이나 요괴에 대한 이야기들을 기록하기 시작하셨고, 저는 또 그 블로그를 읽고 언급된 이야기들을 찾아보기 시작했고…… 확실히, 한 가지를 깊이 파기보다는 넓게넓게 훑고 다녔던 것 같습니다.
Q. 《월하의 동사무소》로 본격 데뷔하신 걸로 아는데요. 한국의 온갖 귀신이 다 나오는 작품이라고요. 작가님에게 ‘귀신’은 무엇인가요? 우리는 왜 귀신을 알아야 하나요?
《월하의 동사무소》는 귀신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그 이전에 공무원이 주인공인 어반 판타지라고 생각하고 쓰기 시작했어요. 옛날식으로는 동헌이고 요즘식으로는 동사무소나 구청 같은 곳에, 낮에는 민원인이 드나들고, 밤에는 귀신이 사또 앞에 나타나 억울함을 호소하는 그런 이야기인 거죠. 그래서 실제로 우리 옛 이야기에 전해지는 귀신이나 괴물, 도깨비 이야기도 하고 있지만, 현실의 문제로 자살한 귀신들의 이야기를 다루기도 했어요. 귀신이나 괴물, 도깨비, 민담 속에 나오는 ‘신령하고 비천한’ 존재들의 이야기는 사실, 여성이나 장애인, 신분 낮은 사람과 같은 약자들의 이야기였고, 그래서 현대에도 사람들에게 두려움이나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것 같습니다. 작년에 출간한 《여성, 귀신이 되다》는 근대 이전 우리 이야기 속 귀신들을 중심으로 여성들이 겪은 억압에 대해 쓴 책인데, 역시 그런 관심의 연장선에서 이런저런 논문들을 찾아 읽다가 읽기 쉽게 이야기처럼 정리해본 것이었고요. 요즘은 현대의 귀신들에 대해 관심을 갖고 자료들을 찾아보고 있습니다. 자료가 좀 더 모이고 생각이 좀 더 정리가 되면 재미있는 게 나올지도 모르겠어요.
Q. 귀신이나 벌레, 기이한 현상 등 사람마다 무서움을 느끼는 대상이 다를 텐데요. 작가님이 무서움을 느끼는 대상은 무엇인가요?
어릴 때에도 귀신이나 UFO를 그렇게 두려워하진 않았어요. 그보다는 질병이나 범죄를 두려워하는 어린이였습니다. 제가 어릴 때에도 아직 콜레라나 장티푸스 같은 수인성 전염병으로 돌아가시는 분들이 계셔서 뉴스에도 나오고, 장티푸스 관련 공익광고가 나오기도 했어요. 저는 앰뷸런스가 클로즈업되던 그 광고 장면이 무서웠고, 지금 생각하면 결과적으로 혐오를 선동했는지도 모르겠다 싶은 당시의 에이즈 다큐멘터리를 무서워했고, 731 부대에서 자행했던 인체실험을 무서워했어요. 납치되는 아이들과, 납치되고 살해되는 아이들과, 시신도 찾지 못한 아이들의 이야기를 무서워했고, 빨간 마스크나 홍콩할매보다는 골목길에 서 있는 봉고차들을 무서워했습니다. 지금도 어느 정도는 그래요. 그냥 귀신 이야기는 무섭지 않습니다. 현실의 범죄나 전쟁, 차별과 혐오, 기아, 그리고 지구온난화 등을 투영해낸 이야기들이 더 무섭죠. 덜 무서워지려고 어려운 이웃을 돕고, 정치에 관심을 갖고, 차별금지법을 지지하고, 대중교통을 이용하고, 쓰레기를 조금이라도 줄여보려고 해요. 늘 제대로 되는 건 아니지만요.
Q. 엄청난 다작을 하시는 걸로도 유명하시지요. 전혜진 작가님의 하루 중 작업 시간은 얼마나 되시나요? 빠른 마감에 비결이 있다면?
SF 쪽에는 워낙 원고를 빨리 쓰시는 분들이 많이 계시다 보니, 저 정도는 빠른 마감이라기보다는 마감을 지키려고 노력하는 쪽에 가깝습니다. 오전 일곱 시 전에 출근해서, 오후 여섯 시에 집에 돌아옵니다. 하원하는 아이들을 챙겨서 저녁을 먹고, 같이 책을 읽고, 숙제도 봐주다 보면 밤 열 시가 넘어가죠. 최대한 시간을 짜내도 하루 두세 시간 정도입니다. 발상은 자유롭게 얻는 편이지만, 집필에 들어가면 성실하게 업무를 쳐낸다고 생각하고 일합니다.
그런데 정말로, SF 쪽에는 집필 속도의 단위인 “곽재식 속도”로 유명하신 곽재식 작가님도 계시고, 저는 듀나님이나 김보영 작가님이 마감을 늦으셨다는 이야기는 별로 못 들어본 것 같아요. 물론 마감 때문에 괴로워하는 작가의 이야기는 흥미진진하고, 또 만화책의 “후기만화”나 작가를 주인공으로 하는 여러 창작물에서 마감에 늦고서도 게임 등으로 도피하며 빈둥거리는 작가의 이야기들이 많이 나오긴 하지만, 그런 것은 어느정도 무용담에 가까울 것입니다. 살면서 가끔 일어날 수는 있겠지만 실제로는 성실하게 일할 수 있으니까 창작 일을 계속 할 수 있겠지요.
⭐5+1) BONUS
Q. 소설가 밸런스 게임입니다. 내가 쓴 소설의 주인공이 되어보기 VS 내가 쓴 소설 속으로 들어가지만 작품에 안 나온 익명의 인물이 되어보기. 작가님이라면 무얼 고르시겠어요?
당연히 "내가 쓴 소설 속 익명의 인물 되기"입니다. 제 소설의 주인공은 이미 제가 그 운명을 다 알고 있지만, 익명의 인물이라면 제가 잘 아는 세계에서 제가 잘 모르는 이야기를 해볼 수 있겠네요.